내가 아는 어떤 언니의 글..

내 새끼가 아프다
열이 40도 까지 났다
안달 복달해도 병원에 매인 몸이다
남편이 출근을 못했고
밤마다 칭얼 거려 며칠째 잠도 제대로 못자며 아이를 간호했다
원래도 나보다 제 아빠를 더 좋아하던 아이는 이제 내가 안아줘도 자려고 하지 않고 나를 밀어내고는 아빠품으로 기어간다
열이 떨어지면서 발진이 났다는데
아마도 돌발진이겠지만 가려워하는 거 같기도 하단다
가서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은데
오늘은 당직이라 집에도 못간다
남편이 찍어서 보낸 사진으로만 봤다
왜사는걸까 나는…
우리 아가는 자기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한손에 꼽을 만큼도 못만났다
낯가리고 부터는, 할머니 할아버지 만날 때 마다 집이 떠나가라 운다
의대 시절엔 시험땜에,
지금은 당직으로 병원에 매여 있어서
명절엔 벌써 몇년째 가지 못했고
집안 경조사 못간지도 몇해째다
아버지가 서운하신 나머지
“널 잘못 키운 거 같다.” 소리도 하셨다.
딱 잘라 말해,
나는 사람 구실을 못하고 있다
엄마 노릇도 아내 노릇도 자식 노릇도….
이렇게 살아서 나는 뭐가 되려는 걸까.
몇년 이렇게 살고 나면 그때부턴 짜잔 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데.
중학교 고등학교 때, 시험 있음 친구랑 만날 약속 안하고, 가족 모임도 빠지면서 공부하고
학부 대학원때, 연구소 생활 하면서
시험 논문 땜에 또 그리 살고
의대는 또 연고지 아닌데로 와서
친척 친구들이랑 멀리멀리 떨어져 살고
의사 되고 나니 잘시간도 먹을 시간도 없이 일에 매여있고…
그래도 앞날은 안보이고
이거 끝나면 뭐 해먹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울고 싶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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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나는 연구소에서 만났고, 대학원 선후배 이기도 하다.
언니는 석사를 마치고 의대를 진학했고,
나는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으로 진학했다.

누구의 삶이 더 팍팍하다고 감히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가 결혼을 했더라면, 지금의 언니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아직은 내 일신만을 위해서 사는 삶이기에 언니보다 마음만은 덜 아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내가 겪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결혼과 육아라는 고비는 나 또한 언제가 경험해야 하는 일이기에…

하루에도 몇번씩 그만 할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하는 연구가 세계적인 연구인것도 아니고,
다만 세계적인 연구를 해보겠다고 매일 매일 앉아있다.
그리고 부족한 내 자신을 너무나도 자주 탓한다.

자자. 푸념 그만하고, 나에게도 기회는 있다.
그리고 내가 카이스트 로봇공학 여성박사 1호로서의 명예를 사수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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